작성일 : 19-11-22 22:53
누가 뭐래도 최고의 여름
 글쓴이 : 서세일
조회 : 17,554  
CCUSA"
처음 CCUSA를 알게 된것은 해외봉사 활동을 가서 만난 형으로 부터였다. 같이 한달여 동안 생활한 형과 친해지면서 서로서로를 알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그 와중에 문득 형으로 부터 CCUSA를 소개 받게 되었다. 그 형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을 가고싶었는데 해외봉사활동과 겹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본인은 영어가 부족하다 느껴 해외봉사활동을 왔다며 3학년이었던 나에게는 좋은경험이 될 것이라며 지원해 보라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고있는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사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과 정보들은 웬만한 관심이 없다면 쉽게 접하지 못하는것이 지방의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대학생 때가 아니면 못할것 같은 생각에 한번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CCUSA 홈페이지에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접수 마감일이 거의 다 되었을 때라 다소 서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했는지 걱정도 되었고 모든 항목을 영어로 작성하는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장애인 캠프를 비롯한 몇 종류의 캠프를 지원하려면 다시 지원동기를 적어야 했기에 미처 지원하지 못해 캠프 배정될 확률이 줄어든것 같아 내심 걱정했었다. 그리고 얼마뒤 서울로 올라가 국내 인터뷰를 보았다. 다행히도 인터뷰를 통과되었다.

얼마 뒤 기다리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내가 배정된 캠프 디렉터로 부터 메일이 와서 내가 할 일에 대한 것과 동의를 구하고 답장을 하고 나니 비로소 미국에 간다는게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국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오리엔테이션 일정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었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서로서로 캠프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을 함께 했던 것 같다.

우리 학교의 1학기 기말고사 일정보다 출국일이 먼저 나와서 출발하기 전 어려움을 겪었었는데 대부분의 교수님들께서는 흔쾌히 사정을 이해해 주셨다.
6월14일..드디어 출국..
일본을 경유하여 LA로 가는 비행를 타게 되었는데 다른 국내 참가자도 여러명 만났다. 각기 다른캠프로 가는데 우연히도 LA오리엔테이션에 함께할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LA오리엔테이션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Social security number 받는 것 외에는 게임등을 하며 하루를 간단히 보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딪히게 된 언어의 장벽. LA오리엔테이션에는 주로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어찌나 말들이 빠른지 TOEIC 리스닝을 24간동안 하는 느낌보다 더 했다.
다음날 반가운 마음의 국내참가자들과의 만남도 이내 이별로 이어지고 각자의 캠프로 향했다. 내가 가게 될 캠프는 코네티컷에 위치해 있었고 Hartford 공항까지 가는 것도 경유를 하게되어 도착했을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

디렉터가 공항근처의 숙소를 예약해 두었고 다음날 아침 픽업을 한다고 했는데 예약에 문제가 생겨 디렉터에게 긴급구조 요청을 해 새벽 3시에 디렉터가 공항까지 나와 주었다. 캠프로 디렉터와 함께 가는 길에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았다. 디렉터가 너무 친절했고 디렉터 역시 작년에 한국에서 온 친구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칭찬에 조금의 자신감도 생겼다.

저녁에 도착한 캠프는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 어떠한 곳인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너무 피곤했던지라 이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캠프는 정말 멋진 곳 이었다. 4-H 캠프라고 주위에 여러 개의 캠프가 연계를 이루고 있었고 다른 캠프로 가서 다른 스텝들과 4일간 같이 연수를 받았다. 아시아 사람은 우리캠프에서는 내가 유일했고 다른 캠프로 온 중국인 1명 말고는 영어권과 유럽이 주를 이루었다.

4일간의 연수가 끝나고 같은 캠프로 배정받은 카운슬러들과 우리 캠프로 와서 다시 일주일간의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 기간 동안 친구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같이 배우고 먹고 자며 나도 조금씩 영어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우리 캠프에는 Swimming, Horse, Climbing wall, Arts & Crafts, Sports, Rope, Dance, Drama, Hiking and Nature 등의 것들을 주로 하였는데 내가 맡은 것은 Climbing wall, Arts & Crafts, Sports, Rope 이 네 가지였다. Climbing wall 같은 경우는 나도 처음 접해 보는 것이어서 배우면서 같이 즐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이다. 우리캠프는 Traditional camp였는데 Traditional camp라 좋았던 점은 모든 활동들을 가르치는 개념보다는 함께 즐긴다는 개념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모든 교육일정을 마치고 캐빈을 청소하고 캠프도 아이들 맞을 준비가 다 되었지만 약간의 긴장감은 있었다. 물론 옆에서 다른 카운슬러들이 도와주겠지만 언제까지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자존심으로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었다.
일주일 단위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캠프였다. 일요일 오후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캠프에 보내고 금요일 저녁이면 다시 데려가곤 했다. 처음 아이들을 받았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 우리 캐빈에는 카운슬러 3명과 아이들 5명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10살에서 12살까지 지내는 캐빈에서 5명의 악동들과 함께한 첫 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 주였다.
걱정했던 것 보다 훨씬 애들과 잘 어울렸고 하루하루 일과도 재미있었다. 우리 캠프의 하루는 7시30분에 시작된다. 7시 45분에 Flag를 시작으로 아침식사, Cabin clean up 시간 - 우리캠프에는 support staffs 들이 없고 모든 정리정돈 및 청소는 애들이 돌아가며 자체적으로, 물론 말 안 들을 때에는 강제로 시키지만, 그리고 주방의 일은 CIT(Counselor In Training)들이 거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굉장히 편했다. 애들이 동기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게끔 만들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9시 30분부터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2개 하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취한 후에 나머지 2개의 프로그램을 한다. 4시간 중 한 시간은 내게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밀린 빨래나 인터넷을 이용하곤 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앞서 말했던 것이고 첫째날 카운슬러들이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의 skit 을 보여주면 애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선택 하여 들을 수 있다.

일과 후에는 간식시간과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2시간 중 1시간 역시 자유시간이었다. 이후 Flag와 저녁식사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항상 Evening program이 진행되었다. 매주 테마가 있었고 테마에 맞추어 한주간의 Evening program이 진행되었다.

International week, Super Hero week, Rock&Roll week, Hollywood week 등의 다양한 주제로 매주 카운슬러들이 거기에 맞는 program을 짜고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재미난 캠프가 될지 매주 이야기 하고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내 자신이 놀랍고 신기했다.

화요일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날인데, 숲속에서 캠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장작불을 지펴 그릴을 올려 햄버거와 핫도그를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 까지는 좋은데 모기들 속에서 밤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애들 앞에서 싫은 내색도 못하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역시 다 좋은 추억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요일은 Dance!! 마치 나이트 클럽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놓고 그냥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는 것이다. 애들이 이날 각자 이쁘게 치장하고 오면 얼마나 귀여운지 잊을 수가 없다.

생각보다 캠프에서의 일주일은 정말 짧았다. 그래도 이것도 일이라고 주말이 좋긴 좋았다. 미국 친구네 집에가서 파티도 하고 가까운 보스턴으로 여행도 다녀오곤 했으니 말이다. 아니면 그냥 캠프에 남아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며 낮잠도 실컷 잘 수 있으니 사실 항상 주말을 기다리곤 했다. 대부분의 외국 카운슬러들은 나이가 어려 법적으로 (만21세) 술을 마시지 못했기에 술 좋아하는 디렉터의 단짝친구는 항상 나였다. 주말저녁이면 어김없이 근처 펍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곤 했다. 흡연자였던 나는 캠프에서 담배피울 수 있는 것 역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Staff lounge가 따로이 마련되 있어 그곳에서는 언제든지 피울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풍선아트를 할 수 있어서 애들한테 가르칠 기회를 부여받아서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맡았던 것이랑 치어복을 가지고 가서 애들과 스탭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기립박수 받은기억, 그리고 많은 애들에게 아리랑을 불러 주고 우리의 놀이 등을 가르쳐 주었던것이 기억에 남고 우리의 것이 세계에서도 통하는 것을 볼 때 나름 보람도 느꼈었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8주가 지나있었고 내년 여름을 기약하며 다들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다.

캠프를 마치고 약 3주간의 기간 동안 미국 여기저기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두달 동안 모아둔 급여. 뉴욕, 워싱턴, 라스베가스 , 그랜드 캐년, LA를 둘러보는 것은 정말 캠프와는 다른 경험이었고 많은 고생과 즐거움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간혹 한국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었던 낯익은 얼굴을 볼 때마다 무척 반가웠고 다른 캠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새 먼 옛날 일처럼 되어버려서 친구들과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찾아가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더 잘 하고 돌아올 자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할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최고의 여름을 보내고 온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