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8-22 12:56
편견을 가지지 않을 까 염려하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글쓴이 : 정수경
조회 : 17,836  
CCUSA 를 통해 미국 캠프에서의 카운슬러로서의 활동에 대해 알게 되고, 카운슬러가 되기로 결심한 날부터 캠프에 배정되기 까지 인터뷰, 비자준비 등등 꽤 복잡하고 긴 기간 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어느 덧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첫 날, 미국 LA 에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해 카운슬러로서 지켜야 할 규칙사항을 들었다. 그 곳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른 참가자들도 많이 있었고,  기대감과 함께 과연 새로운 환경,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있었다.

다음 날 LA에 있는 공항에서 출발해 내가 일하게 될 곳인 IOWA로 가는 비행기 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았고, 어느 새 아이오와라는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딛었다. 걸스카웃 캠프에 소속되 있던 친절한 여자분이 공항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호기심에 가득 차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나에게 정성스레 대답 해주셨다. 도착하자 마자 캠프 디렉터를 만나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피곤해 보이는 나를 배려하며 빨리 잠자리에 들도록 도와 주었다.

캠프 첫 날, 카운슬러 전부가 모여 간단한 자기소개로 나의 캠프 생활은 시작 되었다. 내가 간 곳은 소규모 캠프 였으므로 카운슬러는 고작해야 12명 쯤이었고 그중 10명이 그 곳 출신이었고, 영국에서 온 내 또래 한명, 그리고 나로 구성이 되었다. 첫 째주는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참 힘든 나날들을 보낸 듯 하다. 우선 부족한 영어로 캠프 온 어린이들과 부모에게 환영 인사를 하는 것부터, 하루 종일 아이들 곁에서 머무르며 공예, 말타기, 수영등을 도와 주는 것까지..모든 것이 새로웠다. 게다가 미국 카운슬러들과의 의사소통에서 오는 어려움까지 하루하루가 긴장이 됐고, 어느 덧 언어의 압박감에 싸여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신기하게도 미국 아이들과 카운슬러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캠프 생활에도 적응해 나가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였다.

하루에 두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 7시 눈 뜨면서부터 밤11시 즈음까지 늘 아이들과 함께 머물러야 했던 것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던 시간 속에서 늘 책임감을 가지려고 노력하였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랑과 가르침과 즐거움을 주는 카운슬러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난 주로 7-10살 여자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와 주는 아이들과 쉽게 친해 질 수 있었고 (물론 나 자신도 늘 적극적으로 생활하고자 했다) , 늘 웃으며 포옹하기를 좋아했던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르게 생기고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편견을 가지지 않을 까 염려하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오히려 나에 대한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으며 다가온 아이들…. 내가 한국 말을 가르쳐 주고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주었을 때, COOL을 연달아 외치며 서툰 실력으로 자기이름을 써가며 기뻐하던 아이들.. 어찌보면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에 캠프에서의 내 생활이 더욱 보람차고 즐겁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