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7-18 18:59
The best summer of Your life라는 표어는 거짓이 아니었다. 최고의 여름을 보냈다
 글쓴이 : 이동희
조회 : 16,966  
캠프명: Tanglewood camp, Maine주 위치
참가자명: 이동희 (경북대)

 우연히 학교 게시판 앞을 지나가다 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CCUSA'에서 미국으로 갈 캠프 카운슬러를 모집한다는. 생소한 이름의 단체에 또 캠프 카운슬러는 뭐하는 거지? 미국의 캠프에 파견되어 각종 활동을 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끌렸다. 숙식 제공에 월급까지 받는다고? 이쯤 되면 친구들이 한 번씩 다 갔다 오는 호주 ’워킹 할러데이‘가 떠오른다. 다들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겸 해서 호주로 떠나지만 결국 하는 일은 말 할 기회도 없는 농장에서의 육체적 노동이라는. 이 프로그램도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일단 영어를 배우러 어디론가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학교에서 한다는 설명회에 속는 셈 치고 들어가 보았다.

매년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미국의 캠프에 파견되어 영어로만 생활한다는 말을 듣고 과연 내가 이 영어 실력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 영어에 관심이 많아 회화 수업 등을 많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외국인들과의 대화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을 많이 보면서도 엄청난 비용과 막상가도 한국인들 사이에서 받는 영어수업이 뭐가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어 쉽게 결정하지 못했었는데 적은 비용에 영어로만 둘러싸인 환경에서 2달동안의 체험은 1년 동안의 어학연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서울에서의 영어 인터뷰와 까다롭다면 상당히 까다로운 비자 심사를 거쳐 드디어 미국으로 향하게 된 나.

미국이라 하면 왠지 밤에는 총소리가 나는 무서운 나라로 생각한터라 상당히 긴장했다. 처음 로스앤젤레스에서 1박 2일의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다시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고 Maine주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2시간 이상 달린 끝에 도착한 Tanglewood camp에는 벌써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반겨 주었다. 이 캠프는 상당히 소규모의 캠프로 staff가 약 30명에 아이들이 들어와도 100명이 겨우 넘는다. 그 역사는 거의 100년이 다되어 가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완전히 숲에 둘러싸여있고 제일 가까운 가게에 콜라라도 하나 사러 가려고 하면 30분 이상을 차타고 나가야하는 고립된 지역이다. 그만큼 얼마나 공기가 깨끗한지 밤에는 별이 쏟아지고,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해변까지는 10분 가량 걸어 나가면 되고 아이들과 지내는 캐빈에는 전깃불조차 안 들어오는 곳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전기 없이 어떻게 지내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자 거기에도 익숙해지고 staff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각종 전화기, 홈씨어터, 무선랜등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와 같은 international
staff는 나를 포함 6명이었다. 그 외의 모든 staff가 현지 미국인들이라 완벽히 영어만으로 이루어진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 중 물론 같은 캠프에 한국 사람이 있는 수도 있지만 이렇게 혼자 캠프에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덕분에 나의 영어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캠프에서의 생활은 7시 25분에 아침 모임(일종의 조회), 아침식사 후 오전 Focus 교육, 점심식사, 오후 Electives, Recreation time, 저녁식사, evening program, 취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Focus는 아이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정하는 집중 프로그램으로 Gardening, Global, Drama, Environment, Art 중에서 하나를 정해 일주일 동안 배운 것을 마지막 날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Recreation time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다. 수영, 각종 스포츠, 놀이 등을 마음껏 한다. Electives는 staff들이 아이들 앞에 나가 오늘은 무엇을 하겠다고 광고를 하면 아이들이 그 중에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하는 활동이다. 만약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한다든지 광고가 부족하다면 한명의 camper도 오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주로 태권도, 축구, 한국문화 등등을 해서 나름 대로 인기가 있었다. 특히 태권도할 때 도복을 차려입고 발차기 한번 해 주면 아이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곤란할 정도였다. 매일 Evening program은 다른 것을 한다. Disco night, Harry Potter night, Star Wars night 등 2달 동안 한 번도 같은 프로그램이 반복되었던 적이 없어 내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나는 여기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한 번도 내가 일한다고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다만 여기서 내가 많은 걸 배우고 있다는 생각만 크게 들 뿐이었다. 

세상 어디에서 이렇게 깊숙이 찐하게 미국인들만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 캠프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절대로 아이들을 폭력으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보면 화가 끝까지 나서 몇 번이나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기 다른 staff들은 아무리 말 안 듣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말을 들을 때 까지 말로 타이른다. 폭력은 당장은 빠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으나 길게 봤을 때 부정적인 효과가 많이 나는 것 같다. 나보다 훨씬 어린 staff들이 사려 깊게 아이들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정말 교육이란 이렇게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단위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은 항상 아쉬움에 가득 찬다. 짧은 일주일이지만 그렇게 말 안 듣던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내년에도 또 올 거냐고 물어오면 그 간의 미움이 싹 가신다. 짧은 영어 탓에 깊은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정이 많이 들고 쌓였다.  내년에도 꼭 와야지 하는 생각이 새록 새록 스며 들어 왔다.
 
 2달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 갔다. 워낙에 북쪽이라 마칠 즈음인 8월 20일경에 벌써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캠프를 정리하고 떠나는 날 다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살아 생전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아쉬웠다.

지금도 그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facebook에서 한 번씩 안부를 묻는다.

The best summer of life라는 표어는 거짓이 아니었다. 최고의 여름을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